목마른 자여 오라
할렐루야! 여러분 반갑습니다. 두 주만에 여러분을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광야같은 세상을 하루하루 탈없이 사는 것이 은혜고요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쁨과 감사로 사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주님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주님없이 한시도 살 수 없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입니다. 시편기자가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성도요 거듭난 영의 사람이라면 날마다 이런 고백으로 우리 기쁨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 아시지요? 우리가 아무리 연약해 보이고 실패한 것처럼 초라해진다해도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거룩한 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세상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질지라도 그 어떤 재앙이 우리에게 가까이 못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허락하신 복된 날,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사는 평생의 삶가운데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힘과 능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까지 계속해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생들을 향해 정해 놓으신 길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의의 길, 거룩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유혹이 많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상죄악의 힘이 무섭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당시 남왕국 유다가 빠져 들었던 사회적 현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의 타락이라 할 수 있을만큼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며 관원들은 백성들을 짓밟고 착취합니다. 재판은 뇌물과 불의로 부패했으며 여인들의 허영과 사치는 극치에 달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파경에 이르렀고 종교적으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형식적 제물과 제사가 허다해졌습니다.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나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애굽의 태양신 바알에게로 가나안의 아세라, 몰렉에게로 바벨론의 담무스 여러 우상에게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1장 11절에서 하나님이 탄식하십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몸은 교회에 나왔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중심이 담겨있지 않은 헌금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형식적 봉사와 친교가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너의 마음, 중심을 나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너의 만족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너희의 죽고 사는 것이 나 여호와에게 있다는 사실을 이사야를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만 집중할 때 우리 영의 만족이 있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을 때 사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살아야 합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하고 잠자는 영이 깨어나야 합니다. 더 이상 형식적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영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 그 안에 풍성하신 하나님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세 가지 교훈을 찾습니다. 주님 만나는 참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오라는 것입니다. 부르시는 초청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초청하십니다. 주님의 풍성한 은혜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누가 올 수 있습니까? 목마른 자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목말라 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물이 적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찾아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허덕이며 목말라 있습니다. 사랑에 목마른 자도 있고 배고픔에 목마른 자도 있고 돈과 권력, 명예에 목마른 자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갈증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타들어가는 소금물처럼 우리의 욕망도 그렇게 끝없이 타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갈증의 모든 원인이 영혼의 목마름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만족은 없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물을 길러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다섯명의 남편을 바꿔갈만큼 사랑에 굶주린 여인이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 여인의 빈 마음을 채워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영적 목마름이었습니다. 아무리 우물물을 길러 마셔도, 아무리 괜찮은 사람을 만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영적 목마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서만 만족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이 우리 영의 만족이 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샘물은 세상 모든 육적 목마름까지 다 넉넉히 적셔주시지만 그것을 세상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모든 것은 다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주님의 이 영원한 생수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나오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입니다. 공짜로 살만큼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나 귀해서 돈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너무 감사한 것은 이 세상의 정말 귀한 것, 없어서는 안될 최고 비싼 것들이 다 공짜라는 사실입니다. 햇빛이 공짜이고 공기가 공짜이고 물이 공짜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다 공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모두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달리시사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오신 그 사랑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고 도무지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기에 공짜인 것입니다. 문제는 공짜라고 해서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절대 값싼 은혜가 아닌데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취급하여 자기 편한대로 이용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악세사리 십자가로 생각합니다. 시간이 나면 예배오고 바쁘면 다음에 가도 되는, 일이 생기면 못가고, 심기가 좀 불편해도 못가고, 기분이 언짢아도 못가고, 누가 나를 좀 건드렸다고 안가도 되는 그런 싸구려 신앙이 오늘 교회 안에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그분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만약 그 가치를 가격으로 매겨놓았다면 세상 어느 누가 그것을 돈으로 살만큼 부자가 있었겠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나오라는 것입니다.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오면 은혜받지 않습니까? 오면 포도주와 젖으로 주린 우리 영혼이 만족함을 얻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본능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과 달리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만족이 영적 양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빈곤을 느낄 수 있어야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같이 메마른 세상에 반석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광야에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하셨습니다. 이 물은 웅덩이에 고인 물과 아닙니다. 썩고 냄새나는 세상 물과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는 맑고 깨끗합니다. 영혼을 늘 새롭게 하고, 새 힘을 줍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7: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긍휼의 생수, 기쁨의 생수, 믿음, 소망, 사랑의 생수, 진리의 생수, 은혜의 생수, 평화의 생수를 흘러 넘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물로 나와서 영생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물로 나와서 기쁨과 소망에 잠길 수 있고요, 우리는 이 물로 나와서 치유와 회복, 새롭게 하심의 큰 은혜가운데 잠길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의 샘물, 구원의 샘물, 능력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더러운 죄악을 씻고 순결하고 고결한 삶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솟아나는 샘물을 통해 솟아오르는 정욕의 불꽃, 욕망의 불꽃, 미움의 불꽃, 불신의 불꽃을 끄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신 자는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게 되어 그리스도의 새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서 마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소망이 내 소망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 되고, 하나님의 구원이 내 구원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은혜가 되고, 주님이 내 주님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2장 천국비유에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주님 청하셨지만 그 초대에 응한 택함을 입은 자가 심히 적은 것입니다. 그 부르심의 소망을 소중히 함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자리로 깊이 들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주님을 만남으로 즐거움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 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여러분 신앙생활은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가는 여러분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주님 만나는 즐거움으로 벅차 있어야 정상입니다. 세상 것은 다 헛것입니다. 참된 진리가 오직 주님에게만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양식 아닌 것을 위해, 배부르지 못할 세상 욕심에 소중한 시간과 힘과 삶의 가치인 은을 달아줍니다. 그리고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을 아무리 들어보아도 거기에 희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참된 가치가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아오라" "청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겁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먹는 것입니다. 귀로 먹고 눈으로 먹으면 그 말씀이 우리 심령에 담겨져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름지게 되고 그 말씀 진리가 우리를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즐겁게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을 청종할 때 하나님과 교감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깊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을 때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포도주는 잔치의 기쁨이요, 십자가의 피의 상징입니다. 젖은 칼슘과 비타민과 탄수화물과 같은 각종 미네랄이 들어있는 종합영양식품입니다. 생명의 양식입니다. 곧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말씀의 신비와 능력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창조와 구원과 새롭게 하심, 치유와 회복이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오기만 하면 십자가의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이 말씀을 풍성히 공급해 주십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기쁘게 하고 말씀은 어린아이를 성장 시키듯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십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우리의 죄악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데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갈이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아모스가 말합니다. 내가 말씀없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애를 쓰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터진 웅덩이를 파는 헛수고일뿐인 것입니다. 말씀을 소중히 여기시고 말씀을 청종함으로 말씀 안에 거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십시다.
셋째,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는 영화로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영화로운 삶은 다윗에게 언약하신 영원하고도 확실한 은혜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됩니다. 주님 십자가 그 복음 안에 있는 자를 하나님은 다시 소명을 주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자로 세워주심으로 만유위에 충만하신 그 충만으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3-5절 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먼저 우리 영혼이 살아야 하고요, 우리 영혼이 살아날 때 하나님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를 근거로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삼하7:12입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6절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언약하시기를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히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다윗의 후손 왕위를 말함이 아닙니다. 솔로몬과 그 후손들에 의한 왕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어졌습니다. 구속주가 되심으로 영원한 왕이 되셨고 자기 백성을 영원히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귀와 영화로 관 씌우시고 높이시어 영광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성도는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주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러운 권세를 소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이 엄청난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명자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한몸 잘먹고 잘사는 것, 내 가족 내 친척 잘 간수하고 지켜주는 것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의 사명이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이루신 그 영원한 언약이 이미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 복음을 당당하게 짊어지고 전파하는 사명자로 살아야합니다. 늘 언제나 전도의 거룩한 부담을 지고 기쁨마음으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우리 몸에서 예수의 향기가 발하도록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참 이스라엘의 진정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늘 청종하며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 때 그래서 우리가 우리 안에 성경에 이름과 같이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될 때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십시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된 진리의 말씀이 전해질 수 있도록 첫째 기도하고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빛과 소금으로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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