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자! 30번째, 예수의 피로 형상을 회복하자!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자!
30번째, 예수의 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
창1:26-28, 엡1:7-10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과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셔서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을 다스리며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 약속은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않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이과 같이 된다는 마귀의 간교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따 먹고 말았습니다.
불순종을 통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간은 하나님이 특별히 생기를 불어 넣어주신 “영”을 상실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영의 기능은 하나님과 교통을 하며 그 힘과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며 정복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과 약속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불행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께로 지혜와 능력을 공급 받는 영의 기능이 소멸되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통하여 삶이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는 불행과 고통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며 불행과 저주의 삶을 사는 아담과 하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이 가죽옷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창1:28절의 복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 된 만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며 다스리며 정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속에 이루기를 위해 기도하며 해산하는 수고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위에서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보배로운 피를 아낌없이 흘려주신 피의 능력을 알고, 그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흘리신 피는 어떤 피 이며 그 피로 인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어 지는 가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흘리신 피는 우리가 범한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킨 피입니다.
성경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 그들을 죄 값으로 죽이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죄를 가려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가죽옷은 인간이 범한 죄의 수치와 저주를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범한 죄의 수치와 저주를 가리기 위해서는 짐승이 피를 흘리며 죽어야 그 가죽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저주를 가려 주시기 위해서 짐승을 죽이셨고, 그 피의 값으로 인해 인간에게 가죽 옷, 즉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죄 없는 짐승이 고통을 당하며 죽여야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죄 값으로 죽어야 할 죽음의 분량을 하나님께서는 짐승에게 전가시키셔서 그 피의 값으로 인간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피흘리며 죽는 짐승은 이 세상에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실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그의 피로 사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키신 분이 십니다.
히 9:21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창3:21절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의 가죽옷을 입히시려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힘이나 정결함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완전한 대속의 피입니다.
그 피로 인하여 우리는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완전하신 대속의 피 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과 영원한 속죄함을 받은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내가 범한 죄 값으로 흘려야 할 피를 대신 흘려주신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내가 흘려야 할 죽음이 피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불쌍히 보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시기 위해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실 때 많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 불쌍하기도 하고, 애처로워서 울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 말씀은 예루살렘 여인들아 나의 죽음을 보고 울지 말고 네 죄 값으로 죽을 너의 영혼을 보며 울라, 죄 값으로 죽을 네 자식의 영혼을 보며 울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나를 위해 피흘려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울어야 합니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피를 흘리며 죽으시는 것을 보며 자신의 죄의 분량을 보며 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며,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을 깨닫고 우리 죄를 위해 대신 피 흘려주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십시다.
이제 저와 여러분의 죄는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모두 사해 졌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 졌습니다.
성경은 이 피를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이제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에서 완전히 해방이 된 것입니다.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 해방은 완전한, 아니 영원한 해방인 것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죄에서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속에 구속당하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이 계시며, 그 피로 인하여 우리는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피를 흘리실 때, 그 고통은 슬픔의 고통이 아니요, 억울한 고통이 아니요, 기쁨과 사랑의 고통인 것입니다.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해산 할 때, 해산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때 슬퍼하는 사람 없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 고통은 사랑의 고통이요, 새생명이 탄생하는 기쁨의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 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몸의 피 한 방울까지 아기지 아니하노라. 내가 흘리는 이 피는 너희의 죄를 위해 흘리는 용서의 피요, 사랑의 피요, 생명의 피니라, 너희는 내 피로 죄에서 자유 하라, 내 피로 죄에서 해방을 받아라. 내 피로 죄와 싸워 승리하라” 라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흘리신 피는 마귀로부터 해방시킨 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 하며 고통과 슬픔 속에서 괴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를 하고 있는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 하셨습니다.
출 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는 달갑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벌써 나이가 80입니다.
그리고 혼자입니다.
어떻게 이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모세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지금 들고 있는 그 지팡이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리라 그리하여 백성들이 너를 믿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순종하여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며 애굽으로 돌아와 바로에게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 주시오. 우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가겠습니다.
바로왕이 들어줄리 만무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서 녹아지는 것 같았지만 도리어 강퍅해 진 것입니다.
강퍅해질 때로 강퍅해진 바로의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그는 하나님 앞에 깨어질 줄 모르고 마음이 더 강퍅해 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깨뜨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볼 때 그 앞에 순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히 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강퍅하게 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깨어지고, 부셔지고, 녹아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봄에도 바로의 마음이 녹아지지 않고 강퍅해지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재앙을 애굽에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아홉 가지 재앙은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별되게 임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아홉 가지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재앙은 애굽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까지 재앙이 임하는 큰 재앙이었습니다.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짐승과 사람의 첫 것이 죽는 재앙입니다.
첫 것이 죽는 다는 것은 가문이 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자는 그 집 가문의 대를 이을 자입니다.
아버지의 재산과 가문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장자들은 매우 주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재앙이 애굽 전역에 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재앙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 때에 피할 길을 주십니다.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심판을 하십니다.
성경에는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망하려고 해도 망할 수가 없습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든지 아니면 그 시험을 피할 수 있는 피할 길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어린양을 잡아 그 피로 집 문좌우 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재앙이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가 있습니다.
믿으면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고 행하면 됩니다. 어린양의 피를 집 문앞에 바르면 됩니다.
죽음의 사자는 그 집안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사자는 이스라엘 백성인가, 애굽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구제하며 살았는가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부자며, 얼마나 권력이 있으며, 얼마나 예쁜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사자는 오직 어린양의 피만 보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아마도 저의 생각입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 집 가운데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불순종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집의 장자가 아버지에게 “아버지, 어린양의 피를 문 앞에 발랐어요? 그 때 똑똑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 이놈아, 어린양의 피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착하게 살면 되는 거야, 아들아 이 아비만 믿고 걱정하지 말고 자거라” 그날 아침 그 아들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구원하고, 승리하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시련을 주고, 환난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며, 장례에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날 밤, 죽음의 사자가 애굽 전역을 휘몰아칩니다.
어린양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 없는 집에는 장자가 죽는 엄청난 대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을 대신하여 어린양의 피를 문 앞에 바른 집에는 어린양의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지나간 것입니다.
그날 아침, 기쁨과 슬픔과, 소망과 절망과, 생명과 사망이 분리 되었습니다.
분리가 되는 기준은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이 피로 인하여 바로왕은 무릎을 꿇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의 종살이를 종지부를 찍고,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을 향하여 출애굽하게 된 것입니다.
애굽은 마귀를 상징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류는 마귀로부터 해방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마귀의 종이라는 증거는 내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가 없다는 것은 마귀의 종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었듯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우리는 마귀로부터 영원히 해방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 피는 마귀를 머리를 박살내는 능력이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마귀의 종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예수님의 피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의 피는 의로운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 앞에서는 마귀의 불법이 모두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불법을 들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의 피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께서 흘리신 피 값으로 마귀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것을 믿고 그 피 안에서 해방의 기쁨과 해방의 능력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흘리신 피는 지옥 심판의 문을 닫고, 천국의 문을 열어 놓으신 보배로운 피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자살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은 우리가 살아온 날에 비하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의 연수는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삶은 영원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죽어 심판을 받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죄의 심판을 통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잠시 잠깐의 고통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이니 이보다 더 큰 저주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지옥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정말 지옥은 갈 곳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도 단련이 되면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옥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지옥으로 들어가기 전에 음부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순간 음부는 없어지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 중에 부자가 간 곳이 음부였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눅 16: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어느 누가 지옥의 고통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옥의 저주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라고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지옥의 문을 닫고 천국의 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10장에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여기에서 양의 문이라는 것은 구원의 문이요, 천국의 문을 상징합니다.
이 천국에는 양의 피, 즉 예수님의 피가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의 문에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 얼마나 구제하며 살았는가? 얼마나 교회 열심히 다녔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네 심령 속에 내가 너를 위해 흘린 피가 있느냐? 내가 십자가 위에서 흘려준 피로 살았느냐?
그 피로 감격하며 살았느냐? 그 피로 인해 자유하게 살았느냐? 그 피로 인해 승리하며 살았느냐?”를 물어 보실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피의 공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피 속에 있는 자들은 의인이라고 인처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피로 의로움을 받게 된 사람들은 창1:28절의 복이 회복됩니다.
시 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시 92:13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시 92:14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시 92:15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잠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이제 예수를 믿고 우리의 죄를 위해 흘리신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쳐주십니다.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 앞에 영원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자유 하십시다. 그 피로 승리하십시다. 그 피로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아직도 마귀와 죄와 사망에 늪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