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말씀

090726 다시 시작하는 세계 창8장1절에서22절

아맞다~ 2009. 8. 4. 19:39

090726  다시 시작하는 세계  창8장1절에서22절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한 것 밖에 없는 이 세상을 향하여 행하여 진 홍수의 대 심판은 노아의 방주를 땅위에 창일한 물위로 이리저리 떠다니며 방황하게 하는 중에 땅위의 모든 인간은 전멸이라는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고, 노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방주로 하여금 하나님의 특별하신 관리 속에 보존되다가 마침내 아라랏 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제 아라랏 산에 머문 방주 속에 있는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 후에 있을 새로운 세계를 보이시고 계십니다. 심판 후에 건설되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 노아는 이제 다시 보이는 세계를 향하여 무엇을 깨닫고, 자신의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중요한 사명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중요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말씀이라는 은혜에 의해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당시를 보면 본래는 물이 천지를 덮고 있었습니다.


즉 땅은 물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물이 땅에서 물러감으로써 땅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물은 땅에서 물러간 채 땅을 침범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땅을 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세상은 말씀아래 존재하는 말씀의 나라로 보존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아래 존재함으로써 말씀에 의해 물러가 있는 물도 땅을 침범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말씀을 어기게 됩니다.


말씀에서 벗어나 말씀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로 전략한 것입니다.


즉 말씀이 없는 세상이 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물의 한계를 지키고 있던 그 경계선이 무너지고 물이 땅을 덮어버린 것입니다. 창1:9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 인간의 거주지가 된 것입니다.


물이 땅을 덮지 못하게 그 경계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창조된 모든 만물들은 말씀에 의해서 제자리를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들과 태양과 달이 자기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것도 말씀 때문입니다. 많은 식물이 열매를 맺고, 바다의 어족이 생산하여 내는 것도 말씀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말씀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복종되지 않고 그 말씀이 무시 될 때 하나님은 심판하시는데 마치 노아의 홍수와 같이 물이 하나님이 정하여주신 경계선을 넘고,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고, 별이 떨어지게 되고, 모든 피조물들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계6:12-17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측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 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 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의 않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을 떠난 인간의 죄악입니다.


지금 노아의 때도 결국 인간이 말씀을 떠날 때 땅의 한계를 지키던 말씀이 무시됨으로 물이 땅을 덮어서 창조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까지 다 멸망시켜버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창조해서 시작하지 않고 왜 노아를 살려 놓으신 것입니까? 그것은 홍수 이전의 세계와 노아 홍수후의 세계는 분명히 다릅니다. 노아 홍수 이전의 세계는 말씀에 복종해야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말씀에 복종하지 않을 때는 주어지는 것은 심판이라는 죽음 뿐입니다.


만약 노아까지 심판하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셔서 다시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진다면 또다시 세상은 물로써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물로 덮였지만 죄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노아 홍수후의 세계는 은혜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바로 그 은혜로 살아난 사람입니다.


따라서 노아 홍수 후의 세계는 은혜로 보존되는 세계로 되어 진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보문 1절에서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다고 합니다.


'권념하사'라는 말은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 노아를 생각했다. 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한갓 죄인을 생각하시고 기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그 노아를 불쌍히 여겨 그를 다시 이 땅에 새로운 세계를 펼쳐가는 조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바람을 불어 물들이 물러가게 한 것입니다.


마치 천지 창조 때에 말씀에 의해서 물이 물러가고 뭍이 드러나게 하신 것처럼 지금 노아의 홍수로 범람한 이 물을 은혜라는 말씀이 물러가게 한 것입니다.


노아를 생각한 것은 그를 생각하시고 기억하게 하는 뭔가가 노아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뭔가가 하나님이 하신 언약입니다.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 해 가실 것을 노아의 홍수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노아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노아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노아도 분명히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이 노아를 대신해서 방주가 심판을 담당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방주가 노아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음으로 노아는 그 방주 때문에 방주 안에서 살림을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복종하는 분은 따로 있고, 노아는 말씀을 복종한 그분의 은혜로 말씀을 복종한 것으로 인정받아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 홍수 후의 펼쳐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사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나는 절대로 존재하거나 살수가 없는 죄인인데 어째서 나 같은 죄인이 삶이 가능한가를 알기위해서는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 깃들어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여져야 합니다. 내가 사는 것은 내 재주도 아니고, 내 열심도 아니고, 조상을 잘 둠도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이 은혜가 나를 살리고 나를 존재케 한다는 그 은혜가 내 삶속에서 보여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야 합니다.


나의 죄를 가리우고 나를 대신해서 심판받는 십자가의 형벌이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로 산다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확인되고 보여져야 합니다.


노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만들어 자기를 살린 방주를 보면서 감격할 것입니다.


방주를 보면서 그 방주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일 것입니다.


남들이 죽는 멸망 속에서 자신이 산 것이 어찌 자기의 노력이라고 하겠습니까?


자기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은 하나님이 은혜라고 보여 지지 않겠습니까?


마치 노아의 눈에 방주가 보이듯이 우리들의 삶 속에 십자가가 보여야 합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피라는 희생 때문에 생명이 있고,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고, 양식이 공급된다는 것이 보여져야 할 것입니다.




2. 홍수후의 세상은 감사와 증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새로운 세계입니다.


노아는 지금 살아있지만 사실은 산자가 아니라 홍수와 함께 죽은 자입니다.


이제 자신이 사는 것은 방주와 함께 다시 살아난 새로운 인생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자기가 산 것은 자기를 위해서 자기라는 욕망을 위해서 살라고 산 것이 아니라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만 생명이고 사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증거 하기 위해서 산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세상은 자기를 위해서 자기라는 욕망을 채우느라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다른 자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온 세상입니다.


이제 홍수후의 세상은 나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아 희생이라는 은혜에 감격해서 사는 세상입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서 먼저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립니다.


20절의 말씀을 보면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라고 하십니다.


이 감사제는 노아의 감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정결한 짐승의 희생의 피로 자신의 죄가 용서를 받고, 죽어야 하는 저주의 자리에서 살림을 받았다는 고백입니다. 은혜로 사는 줄 아는 자는 감사 할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감사하라고 그 감사를 증거 하라고 주어진 것들입니다. 16-17절의 말씀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노아의 자원입니다.


앞으로 이 모든 것들이 몇 천배 생육하고 번창해 이 땅에 충만해 갈 것입니다.


홍수로 인하여 다 멸하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자기를 위해서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고,  오고 오는 세대에 보이고 증거 하라고 주신 은사들입니다.


감사에 의해서 그 은혜를 증거 하는 이러한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을 때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라고 하십니다.


흠향 하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감사에 의해서 거룩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 정결한 희생의 제물의 피 때문에 살았음을 고백하는 것이 감사이고 증거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 것입니다.


자신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이 죄가 몰고 온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자신을 대신한 죽음이라는 희생 때문에 살게 된 그 은혜를 무엇으로 그 은혜를 감사하며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을 다 활용해서 하나님의 희생을 드러내고 그 구원의 역사를 보여지게 감사하고 증거 할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21-22절의 말씀을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워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밤과 낮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노아가 감사에 의해서 드린 제물의 희생의 피를 보시고 하나님이 만족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족하신 그 은혜로 멸망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중단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끝나야할 이 세상이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운행케 하시고 보존 시킨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생각이 계속해서 악함에도 불구하고 노아 때처럼 멸망시켜 끝내야하는데 끝내지 않고 만물을 보존시켜 인간의 삶이 가능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어찌 감사하지 않고 이 은혜를 증거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9:29절에 이러한 말을 합니다.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은혜가 아니면, 그분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면 이 세상은 추위도 없고 여름도 없고 밤도 없고 낮도 없이 끝났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두가 무엇 때문에 살고 보존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은혜 때문임을 알고 그 은혜가 우리의 삶속에서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증거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지구가 중단되지 않고 운행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 때문이라고 증거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흠향하시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우리의 삶이 감사제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자식도, 나의 물질이라는 재물도, 나의 시간도, 나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 되도록 감사제를 드리고 이러한 삶을 통해서 십자가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재물을 주시고, 지혜와 지식을 주신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위에 쏟아질 진노를 차단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의 피가 우리에게 내릴 저주를 막고 있습니다.


이 은혜로 우리가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고 온 세상에 보여지게 증거 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